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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영자를 위한 리더십 2012-05-31
조동성 교수
조동성 교수

1. 리더십의 유형

리더십에는 여러 가지 유형이 있다. 지도자의 이사결정방식, 즉 지도자가 부하들의 의견을 들어가면서 의사결정을 하는가 혼자서 결정하는가에 따라 민주형과 독재형으로 나누는 방식이 보편적이지만, 지도자가 부하들의 업무에 대해 취하는 자세에 따라 지시형, 참여형, 위임형으로 나누기도 한다.

감성지수 (Emotional Quotient: EQ)의 창시자 다니엘 골먼과 컨설팅 전문가인 러처드 보이애치스와 애니 맥키는 “감성의 리더십 (원제: Primal Leadership)”이라는 책에서 리더십을 전망제시형, 민주형, 코치형, 관계중시형, 선도형, 지시형의 여섯 가지로 나누고 있다.

휴넷이란 인재육성 전문회사에서는 지도자가 가진 4가지 핵심역량을 기준으로 하여 빈도를 분석한 결과, 업무 분담과 프로세스 정립에 탁월한 조직관리형이 30%, 팀원들의 참여를 독려해 효과적으로 소통하는 동기부여형이 21%, 변화를 창조하고 창의적으로 사고하는 비전제시형이 19%, 목표와 시간을 합리적으로 관리하는 성과형이 7%로 나타났다.

지도자가 추구하는 문화적 성향을 기준으로 하여 분류해보면, 가족적이고 인간미가 넘치는 관계지향형이 34%, 팀 목표달성을 중심으로 결속되는 결과지향형이 29%, 공식화된 규칙을 중심으로 결속되는 위계지향형이 22%, 생동감 있고 활기 넘치는 혁신지향형이 15%의 순이었다.

지도자가 가진 전략적 판단능력을 기준으로 하면 주체기반형(Subject-Based View: SBV), 환경기반형(Environment-Based View: EBV), 자원기반형(Resource-Based View: RBV), 그리고 메커니즘기반형(Mechanism-Based View: MBV)으로 나눌 수 있다. SBV는 지도자가 마치 잔다르크 처럼 자신을 사업 전면에 내세우는 유형이다. EBV는 지도자가 외부기회를 적극적으로 활용하여 사업을 추진하는 유형이다. RBV는 지도자가 핵심역량과 같은 내부 조건에서 사업가능성을 찾는 유형이다. MBV는 지도자가 전면에 나서는 SBV와 대척적인 사고방식으로서, 지도자는 겉에 들어나지 않은채 내부에서 조직의 운영원칙인 메커니즘을 만들고 수정하는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고 보는 유형이다. 구체적으로는 주체, 환경, 자원의 조합과 순열을 기준으로 하여 다양한 메커니즘을 만들어내는 방법을 다루고 있다.

이같이 공시적(synchronic)으로 볼때 다양한 리더십 유형이 존재하고 있지만, 통시적(diachronic)으로도 지도자가 청년기를 지나 중년기, 노년기로 가면서 리더십유형이 바뀌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일반적으로는 지도자가 나이가 들수록 민주형보다 독재형, 참여형보다 위임형을 선호하는 현상이 나타난다. 감성을 기준으로 하는 방식에 있어서는 나이가 든 지도자라면 선도형, 지시형보다 코치형, 관계중시형을 선호할 듯 하다. 핵심역량에 있어서도 조직관리형이나 성과형보다 비전제시형과 동기부여형이 중년기 이후의 리더십에 더 맞는 유형이 될 것이다. 문화적 성향에 있어서는 결과지향, 위계지향, 혁신지향형보다 관계지향형이 더 빈번하게 나타날 유형이다. 마지막으로 전략적 판단능력을 기준으로 하면 주체기반형보다는 메커니즘기반형이 중년기 이후 지도자가 더 큰 효과를 낼 수 있는 리더십이다. 따라서 아래에서는 중년기 이후의 리더십 유형이라 할 수 있는 메커니즘 경영을 소개하기로 한다.

2. 21세기는 초경쟁의 시대

權不十年(권불십년)이요, 花無十日紅(화무십일홍)이라는 말이 있다. 아무리 대단한 권세라도 10년이 지나면 권세를 잃게 되고, 아무리 아름다운 꽃이라도 열흘이 지나면 시들게 된다는 뜻이다. 권투계의 조 루이스, 무하마드 알리나 영화계의 엘리자베스 테일러, 오드리 햅번과 같이 자기 분야에서 20년 이상 정상을 차지하던 인물은 더 이상 나타나지 않는다. 오늘 최고의 자리에 있던 사람이 내일이면 다른 사람으로 교체되고 그 다음날이 되면 또 다른 누군가가 그 자리를 차지하는 것이다. 이러한 현상, 즉 “선도자의 수명주기가 점점 짧아지는 현상”을 다비니(D’Avini) 교수는 초 경쟁(Hyper-competition) 이라고 불렀다.

기업도 마찬가지로 초경쟁의 시대에 살고 있다. 20세기를 지배해온 자동차의 GM과 포드, 통신업계의 ATT, 전자산업의 IBM은 이미 1등 자리를 내놓거나 뒤안길로 사라졌고, 21세기 들어와 새롭게 등장한 야후, 구글도 언제 새로운 기업이 혜성처럼 나타나 자신의 위치를 뺏을까 두려워 전전긍긍하고 있다. 경영자는 한치 앞을 모르는 상태에서 자신이 맡고 있는 기업을 10년이 지나도 매출과 이익이 순조롭게 참출되는 멋진 기업으로 만들기 위하여 노력한다. 경쟁기업들을 이겨서 1등을 차지하고, 한 번 차지한 최고 자리를 오래 유지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 헤맨다.

3. 경영학의 진화

20세기 경영학자들은 기업이 경쟁에서 이기고, 높은 성과를 내기 위한 방법으로 세 가지 요소를 찾아냈다. 1930년대에는 경영주체(business subject)를 찾아냈고, 1970년대에는 외부환경(external environment)을 찾아냈으며, 1990년대에는 내부자원(internal resources)을 찾아냈다. 지금부터 70여 년 전 기업을 이끌어가는 최고경영자를 잘 선택하는 것이 기업경쟁력의 원천임으로 확인했고, 30여 년 전에는 사양산업보다 성장산업이 높은 성과를 내는데 더 유망하다는 것을 파악했으며, 10여 년 전에는 자신만이 가진 독특한 자원이 없으면 경쟁기업에게 유리한 조건을 빼앗긴다는 것을 증명했다.

이같이 20세기 경영학자들은 기업이 원하는 성과를 올리기 위한 원인을 찾아 헤매는 과정에서 큰 성과를 올렸다. 광부가 다이아몬드 원석이 묻혀있는 위치로 한 발자국, 한 발자국 굴을 파 나아가듯이, 경영학자들 역시 경영성과에 조금이라도 더 가까운 원인을 찾아냈다. 경영주체가 중요하다는 다소 막연한 주체기반 관점(Subject-Based View)에서, 경영자가 팔을 걷어 부치고 사업에 더 유망한 조건을 찾아내야 한다는 환경기반 관점(Environment-Based View)으로, 유망한 환경에서 경쟁자를 이기기 위해서는 나만의 독특한 자원을 가져야 한다는 자원기반 관점(Resource-Based View)으로 끊임없이 진화해온 것이다.

이러한 경영 이론의 발전에 대한 역사적 해석에서 각 시대에 새롭게 나타난 경영 관점이 있었다고 해서, 특정 시대에는 한 가지 접근 방식만 존재했던 것으로 오해해서는 안 된다. 1970년대에 중심 경영 관점이 주체기반 관점에서 환경기반 관점으로 바뀌었다고 해서 주체기반 관점이 가치를 잃어버린 것은 아니다. 마찬가지로 1990년대에 환경기반 관점에서 자원기반 관점으로 바뀌었다고 해서 주체기반 관점과 환경기반 관점이 가치를 잃어버린 것은 아니다. 그 보다는 경영학자들이 한 시대를 풍미했던 경영관점에 대한 이해를 어느 정도 한 다음 새로운 관점에 대해 추가적으로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고 보는 편이 더 적절할 듯 하다. 물론 학자 개인은 한 가지 관점을 가지고 연구를 하는 것이 보통이지만, 오늘날 경영학계를 보면 주체기반 관점을 채택하고 있는 학자들, 환경기반 관점을 채택하고 있는 학자들, 자원기반 관점을 채택하고 있는 학자들이 공존하면서 크게 세 그룹을 형성하고 있다.

4. 경영학에 대한 경영자들의 불만

경영주체, 외부환경, 내부자원 중 한 가지만 가지고 경영목표를 달성할 수 있다는 전제 하에 그 중 한가지만을 집중적으로 추구해온 학자들과 달리, 기업경영을 책임지는 경영자들은 이 세 가지 요소가 각각 기업이 원하는 경영성과를 이끌어내는데 있어 필요조건일지언정 충분조건이 아니라는 것을 오랜 경험으로부터 잘 알고 있다. 잭 웰치와 같은 불세출의 경영자를 모셔온다고 해서 다음날부터 경영성과가 나는 것도 아니고, 새로운 성장산업으로 옮겨간다고 해서 성공이 보장된 것도 아니며, 자금이 풍부하거나 독특한 특허를 가지고 있다고 해서 그것이 사업으로 연결된다는 보장이 있는 것은 아니다. 이 세 가지 요소는 기업이 경영성과를 내는데 항상 함께 있어야 하는, 서로 보완적 관계인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세 가지 요소를 동시에 가지고 있으면 그 기업은 원하는 성과를 얻을 수 있을까? 유감스럽게도 이에 대한 정답은 “아니오”이다. 만일 대답이 “예”라면 어떤 기업이 세 가지 요소를 함께 가지는 순간 그 기업의 경영성과는 하루 아침에 고공행진을 해야 할 것이기 때문이다. 어떤 기업이 세 가지 요소를 확보한다고 해도 그 기업이 원하는 경영성과를 내려면 상당한 시간과 노력이 필요한 법이다. 그러면 이 시간 동안 그 기업은 어떤 노력을 할 것인가? 경영학자의 연구주제는 바로 세 가지 요소를 갖춘 기업이 원하는 성과를 얻기 위해 추가적으로 갖추어야 하는 요소이다. 이 네 번째 요소는 무엇인가?

5. 경영자를 위한 경영학 패러다임

경영주체, 외부환경, 내부자원은 경영성과에 간접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요소들일 뿐, 경영성과를 직접 만들어내지는 않는다. 기업이 원하는 성과는 경영활동에서 나온다. 시장에서 소비자를 찾아내어 이들의 욕구를 파악하고, 소비자 욕구를 만족시키는 제품을 개발하며, 효율적으로 제품을 생산해서 소비자에게 제공하고, 이들이 지불하는 돈을 환수해서 새로운 시장조사를 하고 제품개발을 하는 순환과정에서 기업이 추구하는 매출액과 이익, 더 나아가 지속경영을 통해 장수기업을 만들어낸다. 그렇다면 경영성과를 만들어내는데 가장 근접한 위치에 있는 것은 경영활동의 각 요소를 일정한 유형으로 체계화하여 그 활동이 반복적으로 일어나게 하는 경영 프로세스이다. 그렇다면 경영활동의 설계도에 해당하는 경영 프로세스를 만들어내는데 필요한 논리와 원칙(logic and principles)이야말로 바로 원하는 경영성과를 가져오는 네 번째 요소이자 경영자가 그토록 찾아 헤매던 해답이 아닐까?

경영 프로세스를 만드는데 필요한 논리와 원칙을 “메커니즘(Mechanism)”이라고 부르자. 여기서 메커니즘은 기업의 현재모습이라는 단편적 현상을 보는 것이 아니라 현재의 모습이 나타나게 된 원인을 설명하는 개념이다. 따라서 어떤 기업이 원하는 경영성과를 달성하지 못하고 있다면, 메커니즘을 이용한 경영, 즉 “메커니즘 경영(Mechanism-Based Management: MBM)”은 그 원인을 밝히고 그 기업에게 더 나은 경영 프로세스를 갖게 하는 방법을 제공하여 원하는 성과를 올리게 하는 개념이다. 즉 경영주체, 외부환경, 내부자원으로 구성된 투입물(input)을 결합해서 경영 성과라는 산출물(output)을 이끌어내는 중간 단계에 존재하는 것을 경영 프로세스라고 한다면 메커니즘은 이 경영 프로세스를 구성하는 논리이자 이를 지배하는 원칙(principles)이다. 그리고 메커니즘 경영은 바로 이러한 논리와 원칙을 만들어서 시스템에 장착시킴으로써 경영이 체계적으로 이행되도록 하는 경영방식이다. 이 메커니즘을 하나의 독립된 경영요소로 본다면 <그림 1>에서 보는 바와 같이 주체, 환경, 자원에 이어 경영성과에 영향을 미치는 네 번 째 경영요소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림 1> ser-M 패러다임
<그림 1> ser-M 패러다임

6. 뼈아픈 좌절을 통해 찾아낸 메커니즘

내가 메커니즘이라는 네 번째 요소를 찾아낸 계기는 1973년 하버드 박사과정을 시작하면서 첫 학기에 수강했던 MBA과정의 전략과목이었다. 박사과정에 입학하던 당시 MBA학위가 없었던 나는 지도교수로부터 박사과정 이수조건 중 하나로 하버드 MBA과정에서 두 과목을 선택하여 평균 B+이상의 성적을 내라는 조건을 부여받았다. 그리하여 나는 1973년 가을에 시작된 1학기에 “경영정책(Business Pollicy)”라는 이름의 전략 과목을 신청했다. 이 과목은 다른 하버드 MBA과정의 과목과 마찬가지로 첫 시간부터 마지막 시간까지 사례토론 방식으로 진행되었다. 영어 실력도 부족하고, 미국 사회에 대한 이해도 없는 나는 처음으로 하버드 MBA학생들 틈에 앉아 처음으로 사례토의 방식에 접하면서 과정 내내 단 한번도 토론에 참가하지 못하고 꾸어다 놓은 보릿자루 같이 앉아만 있었다. 그 결과 숙제와 기말시험에만 의지했던 내 성적은 참담하게도 C-였다. 아마도 교수는 나에게 F를 주고 싶었겠지만, 그래도 박사과정 학생이라서 C-를 준 것일 것이라고 생각한다. 정작 문제는 그 다음 학기에 다른 과목을 수강해서 설령 A+를 받는다고 해도 평균이 Bo밖에 안된다는데 있었다. 그 성적으로는 지도교수가 부여한 B+에 미달하는 것이었다. 이제 나는 다음 학기 말에 애써 입학한 하버드 박사과정에서 쫓겨나게 된 것이다. 실로 절대절명의 위기였다.

어쩔 수 없는 상황이었지만, 그래도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경으로 크리스마스에서 설날까지 일주일 동안의 휴가 기간에 지난 한 학기 동안 수강한 경영정책의 강의노트를 꺼내보았다. 내용을 보니 강의시간에 토론에 참가하지는 못했지만 교수와 학생들이 한 얘기를 빠짐없이 적어두었던 것이다. 강의노트를 보니 이상한 현상이 눈에 띄었다. 그 것은 교수가 학생들이 발표한 것을 내용에 관계없이 왼쪽 위부터 아래로 주욱 써내려 갔고 나도 그 것을 적었던 것이다. 그러다 보니 일렬로 내려 적은 내용 중에는 같은 내용이 반복해서 나오기도 하고, 반대되는 내용이 바로 밑에 나오기도 하고, 큰 이슈 안에 담겨있어야 할 이슈가 큰 이슈와 같은 수준에서 독립적으로 써있기도 한 것이었다. 그래서 나는 종이 위에 동료 학생들이 한 얘기를 다시 쓰기 시작했다. 단 조건은 같은 내용은 한데 묶고, 반대되는 내용은 사이에 ◀▶ 표시를 해서 나란히 두며, 큰 이슈 안에 들어가는 작은 이슈는 큰 이슈 밑에 들여쓰기 방식으로 정리하였다. 그러다 보니 모든 사례에 등장하는 어떤 주제라 할지라도 그 내용에 따라 다음 네 범주로 모이는 현상을 발견했다.

- 주체, 즉 지도자의 역할
- 환경, 즉 주체가 속한 조직을 둘러싼 외부 조건
- 자원, 즉 주체가 활용할 수 있는 내부조건
- 기타

쉬운 예를 들어보자. “한국경제가 1961년 후 급속도로 발전한 이유”를 주제로 토론을 한다면 많은 학생들이 한 두 마디 쯤은 할 것이다.

- 학생1: 과학강국에 대한 의지와 집념을 가졌던 박정희 대통령
- 학생2: 성공적으로 실시한 경제개발 5개년계획
- 학생3: 우리가 벤치마킹을 할 수 있는 산업화의 모범생 일본
- 학생4: 뛰어난 두뇌를 가지고 열심히 일하는 5천만의 한국 국민
- 학생5: 우리를 호시탐탐 노려보고 있어 긴장의 끈을 늦출 수 없는 북한
- 학생6: 대일청구권 자금과 해외은행에서 빌려온 차관
- 학생7: 농민들의 의식개혁을 이룬 새마을운동

만일 학생 7명이 위와 같이 토론에 참가했다면, 교수가 토론 요지를 일렬종대로 내려적을 것이 아니라 내용에 따라 다음과 같이 네 범주로 구분해서 일목요연하게 정리했었어야 한다는 것을 알았다.

- 주체: 박정희(학생1)
- 환경: 일본(학생3)과 북한(학생5)
- 자원: 국민(학생4)과 대일청구권자금/차관(학생6)
- 기타: 경제개발5개년계획(학생2)과 새마을운동(학생7)

나는 모든 토론 내용을 네 가지 범주로 나누는 모델을 만든 후, 1973년 9월 학기에 경영정책 과목을 수강하면서 사용한 사례 모두에 대해 이 모델을 적용해서 분석해보았다. 그랬더니 각 사례에서 제기된 이슈에 대한 학생들의 토론내용을 입체적으로 파악하게 되는 것은 물론이고, 강의실에서 토론 시간에 미처 다루지 못했던 내용도 쉽게 찾아지는 것이었다. 바로 위 사례에서도 환경, 자원과 기타에서는 두 가지씩 찾았으니 주체에 대해서도 한가지만 더 찾겠다는 마음을 먹는 순간, “재계를 이끌고 가면서 신화를 창조한 이병철, 정주영 회장”이 쉽게 머리 속에 떠오르는 것이었다.

이런 분석을 하는 과정에서 마음에 걸린 것은 마지막 “기타”에 해당하는 내용이었다. 분명 모든 분석에는 어느 범주에도 들어가기 어려운 독특한 내용이 있는 법이다. 그러나 기타에 포함된 내용들을 일별하면 그냥 기타로 간주하기에는 너무나도 아까운 것들이 너무 많은 것이었다. 그래서 나는 기타 항목 중에서 주체(subject), 환경(environment), 자원(resources)처럼 눈에는 쉽게 안보이지만 그렇다고해서 결코 무시할 수 없는 내용들이 있다는 것을 깨닫고 이를 메커니즘(Mechanism)이라고 불렀다. 그리고 네가지 범주의 영어 첫글자를 따서 나의 분석모델을 “ser-M”이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s, e, r을 소문자로 처리한 것은 전략의 소재, 즉 전략내용으로 s, e, r, 이라는 세 가지를 포함할 수 있는데, s, e, r 보다는 이 세 가지를 연결하고 포함하는 과정으로서의 메커니즘(M)이 더 중요하다고 보았기 때문이었다.

나는 ser-M 모델을 이용해서 사례를 분석하고 토론에 참가하는 방법을 충분히 연습한 후 1974년 봄학기에 MBA과목을 한 개 더 수강했다. 그리고 그 과목에서 사용하는 모든 사례에 대해 동료 학생들이 토론하는 내용을 네 가지 모델을 이용해서 노트에 적었다. 그러다가 어느 날, 모처럼 기회가 왔다. 그 날 다루게 된 사례는 아메리칸 모터즈 회사(American Motors Corporation)라는 미국 자동차회사였다. 이 회사는 1950년대 중반 GM, 포드, 크라이스러와 같은 대형차가 판치던 미국 자동차 시장에 램블러(Rambler)라는 축소형자동차 (compact car)를 가지고 시장에 진입해서 시장 점유율을 1퍼센트 미만에서 불과 5년만에 6%이상으로 끌어올린 전설적인 회사였다. 담당 교수가 제기한 램블러(Rambler)라는 축소형 자동차(compact car)의 성공원인에 대해 학생들이 처음에는 너도 나도 손을 들어 발표를 하다가 어느 정도 토론이 이루어지고 나니 더 이상 손을 드는 학생이 없어진 것이다. 그런데 교수는 조금 더 토론을 하고 싶었던지, 손을 들지 않고 노트정리만 열심히 하고 있는 나에게 다가와 “조군, 다른 학생들이 토론할 내용에 추가할 것이 없나?”하고 질문하는 것이었다. 나는 그 기회를 놓치지 않고, 다음과 같이 발언했다. “지금까지 교수님께서 제기하신 문제에 대해 동료학생들이 적절한 답변을 상세히 한 듯 합니다. 그 내용을 잠깐 정리하면 몇 학생들은 이 회사의 최고경영자인 조지 롬니(George Romney) 사장이 연비가 적은 축소형자동차가 우리 사회에 필요하다는 본인의 철학을 램블러라는 자동차로 현실화시킨 점, 즉 지도자의 역할을 강조했고, 다른 학생들은 당시 폴크스바겐 (Volkswagen)과 같이 연비가 좋은 외국자동차가 미국시장에 들어와 소형자동차에 대한 소비자들의 인식을 바꿔가고 있는 시장환경을 강조했으며, 또 다른 학생들은 램블러가 가지고 있던 소형차 개발과 생산에 대한 노하우와 같은 내부자원을 강조했습니다. 그러나 정작 중요한 요소가 빠진 듯 합니다. 그것은 위기 속에서 이 회사 경영자와 근로자들이 함께 가지고 있는 상부상조하는 정신, 그리고 그 정신에 입각해서 낮은 고정급과 높은 보너스로 이루어진 단체협약 입니다. 이 단체협약에 의해 근로자들이 어려울 때에는 허리띠를 졸라맨 반면, 회사가 잘 될 때에는 대형회사보다도 더 높은 급여를 받아갈 수 있었고, 이런 정신이 아메리칸 모터즈의 성공을 가져왔다고 봅니다.”내 발언이 끝나자 학생들은 박수갈채를 쳐주었고, 교수는 기말에 A+라는 성적으로 화답해주었다. 박사과정 주임교수 역시 C-와 A+라는 두 극단적인 성적을 가지고 간 내게 “두 과목 평균성적은 Bo밖에 안되지만 성적이 한 학기 만에 가파르게 상승한 추세를 감안해서 통과시켜주겠네”하고 따뜻하게 내 손을 잡아주었다.

그 후 나는 모든 과목에서 네 가지 범주로 이루어진 ser-M 모델을 만들어서 적극적으로 토론에 참여할 수 있었고, 만족스런 성적을 받을 수 있었다. 박사과정을 끝내고 보스턴 컨설팅 그룹 (Boston Consulting Group), 걸프오일 회사(Gulf Oil Corporation), 그리고 서울대에서 조직 생활을 하면서도 나는 참석한 수많은 회의에서 항상 ser-M 모델을 활용해서 토론에 참여했고, 회의에 참석한 다른 분들로부터 긍정적 평가를 받았다.

7. 메커니즘 모델의 초기 활용

1992년에는 반도체 산업에 대한 연구를 시작하게 되었다. 이 연구에서 나는 1980년대에 메모리 반도체 산업의 중심점이 미국에서 일본으로 옮겨갔고, 1990년대에는 다시 일본에서 한국으로 옮겨 가리라는 가설을 세우고, 무엇이 이 산업의 중심점을 옮기는가를 ser-M, 즉 주체, 환경, 자원, 그리고 메커니즘으로 설명하였다. ser-M모델을 이용한 첫 번째 시도였던 이 연구는 자연스럽게 그 다음 연구로 연결되었고, 그 후 나의 모든 연구는 ser-M모델을 기반으로 하여 진행되었다.

내가 지도하는 서울대 박사과정 학생들 역시 ser-M을 기반으로 한 논문을 쓰게 되었다. 그리고 내 지도학생들로 구성된 “ser-M 연구회”에서는 1993년부터 2004년까지 다양한 사례분석을 통하여 메커니즘을 기업에서 찾아내고, 그 메커니즘이 기업성과에 미치는 영향을 때로는 논리적으로, 때로는 실증적으로 분석해 왔다. 즉 “메커니즘▶경영성과”라는 연결고리를 연구주제로 하여, 체계적인 방법으로 각 기업이 가지고 있는 독특한 메커니즘을 파악하고 그것이 기업의 지속적인 경쟁 우위에 미치는 영향을 분석하였다. 구체적으로 연구프로젝트로는 해외로 진출한 기업들이 국제경영 활동을 전개하면서 축적한 국제화 메커니즘, 35년 이상 된 장수기업들이 오랜 기간에 걸쳐 축적한 지속경영 메커니즘에 대한 연구를 수행하였다.

이러한 연구성과를 통해 나는 ser-M 모델에서 처음에 가졌던 가설, 즉 주체, 환경, 자원을 연결하는 단순한 과정으로서의 메커니즘이 아니라 주체, 환경, 자원이 결합되어 새롭게 나타난 내용으로서의 메커니즘으로 연구 초점을 옮겨가게 되었다.

이러한 연구 결과가 집적되어 2006년에는 기업의 지속적 경쟁우위에 영향을 주는 주체, 환경, 자원이라는 각 요소들이 상호작용하는 과정에서 형성된 기업 경영의 기본원리로 메커니즘이란 제 4의 경영 패러다임을 제시하였다.

그러나 메커니즘 모델은 이론적으로 정교하지 못했다. 메커니즘이 경영성과를 내는데 중요하다는 것을 알더라도 원하는 메커니즘을 만들어내는 방법을 모른다면 아무 소용이 없는 법이다. 이 책에서는 기업에 내재하는 메커니즘이란 현상을 설명하면서 메커니즘이 있어야 경영성과가 좋아진다는 가설을 정립했지만, 정작 높은 부가가치가 나오는 분야, 즉 원하는 메커니즘을 만들어내는 방법은 제시하지 못했다. 다시 말해서 “메커니즘▶경영성과”이전에 풀어야 하는 숙제인 “메커니즘 생성원인▶메커니즘”이 빠졌던 것이다.

8. 원하는 메커니즘을 만드는 방법

그리하여 나는 경영자가 원하는 메커니즘을 만들어내는 방법, 즉 “메커니즘 이론”을 연구하기 시작했다. 메커니즘을 만들어내려면 메커니즘이란 현상의 원인을 먼저 규명해야 한다. 열이 나는 환자를 다루는 의사는 열이 나는 원인을 찾아낸 수많은 의학이론으로부터 그 환자의 열을 가져온 특정 원인을 찾아내고 그 원인을 제거함으로써 열을 낮춘다. 마찬가지로 경영학자가 메커니즘이라는 현상을 가져온 원인을 찾아내서 이론을 만들어내면 경영자는 그 이론을 이용해서 원하는 메커니즘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열이난 환자를 알코올로 문질러서 열을 낮추게 하는 대증요법이 의학이론이 아닌 것처럼, 원인을 찾아내는 이론이 뒷받침되지 못한 메커니즘 경영은 진정한 의미에서 경영이론이라 할 수 없다. 따라서 지난 5년간의 기간은 메커니즘을 만들어내는 방법, 즉 메커니즘이라는 종속변수에 영향을 주는 독립변수를 찾아내는 작업의 연속이었다.

해외에서 2-3주씩 강의를 하는 기회를 여러 차례 가졌던 나는 자연스럽게 라면을 비롯해서 제법 다양한 요리를 직접 만들 수 있게 되었다. 이 과정에서 요리에도 나름대로의 이론이 있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간단한 예로 라면 끓이는 방법을 생각해보자. 라면은 식물성이고 기름기가 많다. 따라서 동물성 소재인 계란 한 개와 기름을 중화시키는 파 한 단을 곁드리면 훨씬 균형이 잡힌 라면을 만들 수 있다. 이제는 요리를 해보자. 냄비에 라면과 수프, 계란, 파를 한꺼번에 넣고 끓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처음 라면을 끓는 물에 넣고, 그 다음에 수프를 넣고, 계란을 넣은 다음, 마지막에 파를 넣는 순서가 제격이다. 그러나 라면을 맛있게 만들려면 순서만 맞는다고 되는 것이 아니고 각 재료를 몇 분간 끓일 것인가를 고려해야 한다. 대개 라면은 4분 정도 끓이면 된다. 계란은 너무 설익어도 안되지만 너무 딱딱해져도 안되니 30초 정도가 적당하다. 파는 너무 오래 끓이면 눅눅해질 뿐 아니라 색이 누릿해진다. 따라서 살짝 데치는 듯 5초 정도 끓이면 된다. 이렇게 재료의 조합(Combination)을 라면, 계란, 파로 하고 요리의 순열(Permutation)를 라면▶계란▶파로, 요리의 시간(Time)을 각각 4분, 30초, 5초로 하면 이 세상에서 두 번째로 맛있는 라면 요리가 나오지 않겠는가?

이같이 조합-순열-시간으로 이루어진 “CPT 모델”이라는 요리이론의 논리적 틀을 만들어보니, 문득 같은 이론이 다른 분야에도 적용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갖게 되었다. 그리하여 CPT 모델을 이용해서 메커니즘을 만들어보기로 했다.

2004년부터 1년간 나는 듀크대학의 후쿠아 경영대학원(Fuqua School of Business, Duke University)에서 초빙교수를 역임했다. 이 때 CST 모델을 이용해서 일본 소고쇼샤(총합상사, Sogo-Shosha) 중에서도 미츠비시 쇼지 (三菱商社, Mitsubishi Corporation)과 미츠이 부산 (三井物産, Mitsui Trading Co.)이 매출액, 영업이익, 제품구성, 시장 구성 등 여러 가지 면에서 비슷한 모습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각각 상품과 지역으로 특화된 원인을 찾아보았고, 그 결과 설명력이 높은 인과관계를 찾아냈다.

그 다음에는 삼성, LG, 현대, 대우, 그리고 SK 등 대표적인 한국 재벌그룹들이 매출액, 다각화 정도 등 여러 가지 면에서 비슷한 모습을 가지고 있었으면서도 1997년 경제위기를 만났을 때 제각기 서로 다른 길을 추구했고, 그 결과 엄청난 차이가 나는 결과를 가져온 데 대해 또다시 CPT 모델을 적용해보았다. 이 연구에서 각 재벌그룹들의 역사에서 인력, 자금, 조직, CEO 등의 구성 요소들이 어떤 순서로 활용되었고, 어떤 시점에 활용되었는가를 체계적으로 분석해본 결과 CPT 모델이 각 재벌의 메커니즘이 가진 특성을 규명하는데 있어 처음 생각했던 것 보다 훨씬 더 큰 설명력을 지니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이러한 과정을 거친 끝에 나는 “메커니즘▶경영성과”라는 연결고리 이전에 존재하는 “메커니즘 생성 원인▶메커니즘 현상”이라는 연결고리에 대한 나름대로의 해독을 하였다. 이 연구의 결과 CPT모델을 이용해서 메커니즘의 유형을 24가지 유형으로 정형화하고, 이 과정에서 창조경영 메커니즘을 만들어내는 특정 유형을 찾아내었다. 메커니즘의 생성 원인을 밝힘으로써 원하는 메커니즘을 만드는 방법을 발견한 것이다.

9. 미래의 리더십

경영자가 가져야 할 전략적 판단능력을 기준으로 볼 때 경영자가 성숙하고 조직이 성장할수록 주체기반경영보다는 메커니즘기반경영이 더 적절하다는데 있어서는 이론의 여지가 없다. 이와 동시에 시대적으로도 메커니즘기반경영이 앞으로 좀더 보편적인 경영방식이 되리라는 예측을 내릴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경영자는 자신의 미래를 위해서, 그리고 시대적 흐름에 발맞추기 위해서 메커니즘경영 능력을 갖추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