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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r-M 모델 개발사(開發史) 2012-06-27
조동성 교수
조동성 교수

1973년 하버드에서 박사과정을 시작하면서 첫 학기에 수강했던 MBA과정의 전략과목에서 일어났던 에피소드를 소개한다. 박사과정에 입학하던 당시 MBA학위가 없었던 나는 지도교수로부터 박사과정 이수조건 중 하나로 하버드 MBA과정에서 두 과목을 선택하여 평균 B+이상의 성적을 내라는 조건을 부여받았다. 그리하여 나는 1973년 가을에 시작된 1학기에 “경영정책(Business Pollicy)”라는 이름의 전략 과목을 신청했다. 이 과목은 다른 하버드 MBA과정의 과목과 마찬가지로 첫 시간부터 마지막 시간까지 사례토론 방식으로 진행되었다. 영어 실력도 부족하고, 미국 사회에 대한 이해도 없는 나는 처음으로 하버드 MBA학생들 틈에 앉아 처음으로 사례토의 방식에 접하면서 과정 내내 단 한번도 토론에 참가하지 못하고 꾸어다 놓은 보릿자루 같이 앉아만 있었다. 그 결과 숙제와 기말시험에만 의지했던 내 성적은 참담하게도 C-였다. 아마도 교수는 나에게 F를 주고 싶었겠지만, 그래도 박사과정 학생이라서 C-를 준 것일 것이라고 생각한다. 정작 문제는 그 다음 학기에 다른 과목을 수강해서 설령 A+를 받는다고 해도 평균이 Bo밖에 안된다는데 있었다. 그 성적으로는 지도교수가 부여한 B+에 미달하는 것이었다. 이제 나는 다음 학기 말에 애써 입학한 하버드 박사과정에서 쫓겨나게 된 것이다. 실로 절대절명의 위기였다.

어쩔 수 없는 상황이었지만, 그래도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경으로 크리스마스에서 설날까지 일주일 동안의 휴가 기간에 지난 한 학기 동안 수강한 경영정책의 강의노트를 꺼내보았다. 내용을 보니 강의시간에 토론에 참가하지는 못했지만 교수와 학생들이 한 얘기를 빠짐없이 적어두었던 것이다. 강의노트를 보니 이상한 현상이 눈에 띄었다. 그 것은 교수가 학생들이 발표한 것을 내용에 관계없이 왼쪽 위부터 아래로 주욱 써내려 갔고 나도 그 것을 적었던 것이다. 그러다 보니 일렬로 내려 적은 내용 중에는 같은 내용이 반복해서 나오기도 하고, 반대되는 내용이 바로 밑에 나오기도 하고, 큰 이슈 안에 담겨있어야 할 이슈가 큰 이슈와 같은 수준에서 독립적으로 써있기도 한 것이었다. 그래서 나는 종이 위에 동료 학생들이 한 얘기를 다시 쓰기 시작했다. 단 조건은 같은 내용은 한데 묶고, 반대되는 내용은 사이에 ◀▶ 표시를 해서 나란히 두며, 큰 이슈 안에 들어가는 작은 이슈는 큰 이슈 밑에 들여쓰기 방식으로 정리하였다. 그러다 보니 모든 사례에 등장하는 어떤 주제라 할지라도 그 내용에 따라 다음 네 범주로 모이는 현상을 발견했다.

- 주체, 즉 지도자의 역할
- 환경, 즉 주체가 속한 조직을 둘러싼 외부 조건
- 자원, 즉 주체가 활용할 수 있는 내부조건
- 기타

쉬운 예를 들어보자. “한국경제가 1961년 후 급속도로 발전한 이유”를 주제로 토론을 한다면 많은 학생들이 한 두 마디 쯤은 할 것이다.

- 학생1: 과학강국에 대한 의지와 집념을 가졌던 박정희 대통령
- 학생2: 성공적으로 실시한 경제개발 5개년계획
- 학생3: 우리가 벤치마킹을 할 수 있는 산업화의 모범생 일본
- 학생4: 뛰어난 두뇌를 가지고 열심히 일하는 5천만의 한국 국민
- 학생5: 우리를 호시탐탐 노려보고 있어 긴장의 끈을 늦출 수 없는 북한
- 학생6: 대일청구권 자금과 해외은행에서 빌려온 차관
- 학생7: 농민들의 의식개혁을 이룬 새마을운동

만일 학생 7명이 위와 같이 토론에 참가했다면, 교수가 토론 요지를 일렬종대로 내려적을 것이 아니라 내용에 따라 다음과 같이 네 범주로 구분해서 일목요연하게 정리했었어야 한다는 것을 알았다.

- 주체: 박정희(학생1)
- 환경: 일본(학생3)과 북한(학생5)
- 자원: 국민(학생4)과 대일청구권자금/차관(학생6)
- 기타: 경제개발5개년계획(학생2)과 새마을운동(학생7)

나는 모든 토론 내용을 네 가지 범주로 나누는 모델을 만든 후, 1973년 9월 학기에 경영정책 과목을 수강하면서 사용한 사례 모두에 대해 이 모델을 적용해서 분석해보았다. 그랬더니 각 사례에서 제기된 이슈에 대한 학생들의 토론내용을 입체적으로 파악하게 되는 것은 물론이고, 강의실에서 토론 시간에 미처 다루지 못했던 내용도 쉽게 찾아지는 것이었다. 바로 위 사례에서도 환경, 자원과 기타에서는 두 가지씩 찾았으니 주체에 대해서도 한가지만 더 찾겠다는 마음을 먹는 순간, “재계를 이끌고 가면서 신화를 창조한 이병철, 정주영 회장”이 쉽게 머리 속에 떠오르는 것이었다.

이런 분석을 하는 과정에서 마음에 걸린 것은 마지막 “기타”에 해당하는 내용이었다. 분명 모든 분석에는 어느 범주에도 들어가기 어려운 독특한 내용이 있는 법이다. 그러나 기타에 포함된 내용들을 일별하면 그냥 기타로 간주하기에는 너무나도 아까운 것들이 너무 많은 것이었다. 그래서 나는 기타 항목 중에서 주체(subject), 환경(environment), 자원(resources)처럼 눈에는 쉽게 안보이지만 그렇다고해서 결코 무시할 수 없는 내용들이 있다는 것을 깨닫고 이를 메커니즘(Mechanism)이라고 불렀다. 그리고 네가지 범주의 영어 첫글자를 따서 나의 분석모델을 “ser-M”이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s, e, r을 소문자로 처리한 것은 전략의 소재, 즉 전략내용으로 s, e, r, 이라는 세 가지를 포함할 수 있는데, s, e, r 보다는 이 세 가지를 연결하고 포함하는 과정으로서의 메커니즘(M)이 더 중요하다고 보았기 때문이었다.

나는 ser-M 모델을 이용해서 사례를 분석하고 토론에 참가하는 방법을 충분히 연습한 후 1974년 봄학기에 MBA과목을 한 개 더 수강했다. 그리고 그 과목에서 사용하는 모든 사례에 대해 동료 학생들이 토론하는 내용을 네 가지 모델을 이용해서 노트에 적었다. 그러다가 어느 날, 모처럼 기회가 왔다. 그 날 다루게 된 사례는 아메리칸 모터즈 회사(American Motors Corporation)라는 미국 자동차회사였다. 이 회사는 1950년대 중반 GM, 포드, 크라이스러와 같은 대형차가 판치던 미국 자동차 시장에 램블러(Rambler)라는 축소형자동차 (compact car)를 가지고 시장에 진입해서 시장 점유율을 1퍼센트 미만에서 불과 5년만에 6%이상으로 끌어올린 전설적인 회사였다. 담당 교수가 제기한 램블러(Rambler)라는 축소형 자동차(compact car)의 성공원인에 대해 학생들이 처음에는 너도 나도 손을 들어 발표를 하다가 어느 정도 토론이 이루어지고 나니 더 이상 손을 드는 학생이 없어진 것이다. 그런데 교수는 조금 더 토론을 하고 싶었던지, 손을 들지 않고 노트정리만 열심히 하고 있는 나에게 다가와 “조군, 다른 학생들이 토론할 내용에 추가할 것이 없나?”하고 질문하는 것이었다. 나는 그 기회를 놓치지 않고, 다음과 같이 발언했다. “지금까지 교수님께서 제기하신 문제에 대해 동료학생들이 적절한 답변을 상세히 한 듯 합니다. 그 내용을 잠깐 정리하면 몇 학생들은 이 회사의 최고경영자인 조지 롬니(George Romney) 사장이 연비가 적은 축소형자동차가 우리 사회에 필요하다는 본인의 철학을 램블러라는 자동차로 현실화시킨 점, 즉 지도자의 역할을 강조했고, 다른 학생들은 당시 폴크스바겐 (Volkswagen)과 같이 연비가 좋은 외국자동차가 미국시장에 들어와 소형자동차에 대한 소비자들의 인식을 바꿔가고 있는 시장환경을 강조했으며, 또 다른 학생들은 램블러가 가지고 있던 소형차 개발과 생산에 대한 노하우와 같은 내부자원을 강조했습니다. 그러나 정작 중요한 요소가 빠진 듯 합니다. 그것은 위기 속에서 이 회사 경영자와 근로자들이 함께 가지고 있는 상부상조하는 정신, 그리고 그 정신에 입각해서 낮은 고정급과 높은 보너스로 이루어진 단체협약 입니다. 이 단체협약에 의해 근로자들이 어려울 때에는 허리띠를 졸라맨 반면, 회사가 잘 될 때에는 대형회사보다도 더 높은 급여를 받아갈 수 있었고, 이런 정신이 아메리칸 모터즈의 성공을 가져왔다고 봅니다.”내 발언이 끝나자 학생들은 박수갈채를 쳐주었고, 교수는 기말에 A+라는 성적으로 화답해주었다. 박사과정 주임교수 역시 C-와 A+라는 두 극단적인 성적을 가지고 간 내게 “두 과목 평균성적은 Bo밖에 안되지만 성적이 한 학기 만에 가파르게 상승한 추세를 감안해서 통과시켜주겠네”하고 따뜻하게 내 손을 잡아주었다.

그 후 나는 모든 과목에서 네 가지 범주로 이루어진 ser-M 모델을 만들어서 적극적으로 토론에 참여할 수 있었고, 만족스런 성적을 받을 수 있었다. 박사과정을 끝내고 보스턴 컨설팅 그룹 (Boston Consulting Group), 걸프오일 회사(Gulf Oil Corporation), 그리고 서울대에서 조직 생활을 하면서도 나는 참석한 수많은 회의에서 항상 ser-M 모델을 활용해서 토론에 참여했다.

이렇게 과거를 반추해보니, 지금까지 참석한 회의에서 그런대로 “빈 깡통이 요란하다”는 비아냥을 받지 않은 것은 오로지 박사과정 첫 관문을 통과하는 과정에서 개발한 ser-M모델 덕분인 듯 하다.